
어린이 포털 사이트의 종말
쥬니어네이버가 최근 2025년 5월 27일부로 서비스 종료를 예고했다. 이를 통해 어린이 포털 사이트의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국내에 존재하던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는 야후꾸러기와 다음 키즈짱, 그리고 쥬니어네이버가 있었다. 특히 쥬니어네이버는 야후꾸러기와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던 어린이 포털 사이트 최강자였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혁명 이후로 쥬니어네이버를 비롯한 어린이 포털 사이트는 전부 정상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야후의 국내시장 철수로 야후꾸러기가 서비스 종료를 알리고, 다음 키즈짱도 겨우겨우 살아 숨 쉬다가 2015년이 되어서야 서비스 종료를 하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쥬니어네이버였다. 그리고 올해, 쥬니어네이버의 서비스 종료를 끝으로 어린이 포털 사이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어린이 포털 사이트의 전성기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성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어린이들도 영향을 받았다. 누구나 무엇이든 보고, 듣고, 즐기고, 배울 수 있다는 자유로운 인터넷 세상. 그 누구보다 부모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어린이들이야말로 인터넷의 가장 큰 수요층이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들은 그런 어린이들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미래의 고객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그랬지만, 공공성을 위해서라는 것도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인터넷은 그야말로 야생과도 같았다. 어떠한 룰과 제한도 없는 야생. 네이버 카페에서는 심심찮게 성인들을 위한 영상이 공개적으로 올라왔다. 인터넷 신문의 광고창은 살색의 향연이었다. 미트스핀을 비롯한 수많은 쇼크비디오들은 표면 웹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야생에서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형 포털들은 어린이 포털을 만들었다. 안전한 환경에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 그러면서 어린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그들만을 위한 인터넷 놀이터 공간. 이걸 제공하는 것이 어린이 포털 사이트의 설립 목적이었고,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이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검색 기능, 미니홈피, 학습 자료를 제공하면서 그들이 이 울타리 밖으로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어린이 포털 사이트들은 90년대 중후반~00년대 초반에 태어난 현재 20~30대들이 어린이던 시절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연히 현재 2030세대는 어린이 포털에 대한 향수가 가득하다. 어린이 포털의 전성기는 플래시 게임의 전성기와 맞물리면서 다양한 콘텐츠와 그에 얽힌 추억들을 양산해 냈다.

전성기 시절의 플래시 게임은 단순히 개인 제작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슈게임의 경우에는 아예 해태제과라는 대기업이 붙어서 만들어졌다. 여러 기업에서도 자사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퀄리티 높은 플래시 게임들을 만들었고, 이는 곧 양질의 콘텐츠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쏟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어린이 포털들은 타사와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


바로 자신들의 어린이 포털에서만 서비스되는 독점 게임. 쥬니어네이버는 <동물농장>, 야후꾸러기는 <마법학교 아르피아>가 대표적이었고, 저 둘이 쥬니어네이버와 야후꾸러기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들의 전성기에도 끝이 다가온다.

모바일의 등장과 어린이 포털의 몰락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는 모바일 혁명. 아이폰의 등장 이후로 세상이 바뀌면서 어린이 포털의 아성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굳이 플래시 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들어가면 무료로 제공되는 게임들이 수도 없이 쏟아졌으니까. 게다가 연령 제한 같은 것은 쉽게 뚫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어린이들이 어린이 포털로 들어갈 이유가 있을까? 바깥세상에는 더 재밌고, 간편하고, 심지어는 자극적인 것들도 넘쳐나는데? 어린이들의 수요를 모바일이 모조리 흡수하면서 어린이 포털 사이트의 몰락은 재빠르게 진행된다. 2007년 12월에 <마법학교 아르피아>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야후꾸러기는 2013년 1월 1일, 5년 하고도 1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다. 다음 키즈짱은 근근이 버티다가 2015년에 항복을 선언하고 서비스를 종료한다.

국내 1위 포털인 네이버 측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쥬니어네이버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014년부터 게임랜드 페이지를 개편했으며,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던 플래시극장을 없앴다. 이미 플래시의 대세가 한참은 지났기에 부랴부랴 플래시 중심 콘텐츠를 제공하던 페이지들을 개편하거나 폐쇄한 것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30 세대가 한 번쯤은 즐겨봤을 쥬니어네이버의 핵심 콘텐츠인 <동물농장>의 서비스를 2018년에 완전히 종료시킨 것이다. 그리고 1년 뒤인 2019년에는 게임랜드 서비스도 완전히 종료한다.

그렇게 2020년대부터는 사실상 어린이가 아닌 유아 전용 영상 플랫폼으로 역할을 바꾸게 되었다. 이후 2023년에는 플래시 파일들이 보관된 네이버의 데이터 서버마저 도메인 기간 만료로 인해 접속이 끊기면서 찬란하던 전성기의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추억은 사라져 가고,
2030 세대에게 어린이 포털이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와 플래시게임 재미있다." 하는 곳이 아니었다. 인터넷이라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미니홈피를 꾸며보기도 하고, 플래시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게임 점수를 통해 경쟁하기도 했다. 그리고 게시판에서는 비슷한 나이 또래들과 떠들기도 했고, 글솜씨에 자신이 있으면 인소(인터넷 소설)를 써서 댓글을 받아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슈게임 점수를 더 높게 받아보려고 몇 시간을 라면을 끓여보기도 했다. 그렇게 <슈의 라면가게>에서 만원, 이만 원을 벌고 기뻐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우리는 이제 알바로 수십만 원을 벌고, 직장에 다니면서 이삼백만 원을 번다.
우리는 어릴 때 슈게임으로 진짜 돈도 아닌 게임 내 가짜 돈 일만 원에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뻐했다. 지금 우리는 단위가 다른 진짜 돈을 버는데도 어릴 적 그 기쁨을 다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그때처럼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순수함이라는 감정은 전부 깎여나갔다.
그러나 그런 순수함이라는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항상 그리워한다. 그래서 쥬니어네이버의 서비스 종료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쥬니어네이버의 서비스 종료는 어린이 포털의 종료, 그것은 곧 우리가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느끼게 하는 인터넷 속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쥬니어네이버의 서비스 종료는 유년 시절의 순수했던 나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로스트미디어가 된다는 것이다.
안녕, 쥬니어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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