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추억, 그리고 미스터리. 모든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요소다. 그런데 이 두 개가 결합된다면?
여기 추억에 미스터리가 한 스푼 더해진 로스트미디어가 있다. 바로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황금 구조대>라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어째서, 그리고 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찾는 로스트미디어가 되었을까? 심지어 현상금까지 걸고?
황금 구조대의 등장
2007년,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빨강/파랑 구조대>의 출시를 앞둔 ㈜포켓몬코리아는 PC로 이식된 체험판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바로 2007년 8월에 포켓몬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서 서비스된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황금 구조대>다.
황금 구조대는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들로 가득차있다. 일단, 포켓몬 게임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독점 PC 이식작이라는 의미가 있다. 게다가 닌텐도 전체를 통틀어서 봐도 유일무이한 PC 이식작이었다. 거기에 더해 통신 플레이 홍보를 위한 것이었는지 온라인 기능을 탑재해 다른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용량이 단편 체험판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컸다. 450MB라는 용량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2007년 당시 포켓몬 시리즈 최신작이던 <포켓몬스터 DP> 용량인 64MB의 약 7배에 달하는 용량이었다.
홍보용 체험판 게임이라기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여럿 들어갔고, 때문에 이를 플레이했던 유저들도 많았다. 황금 구조대는 포켓몬코리아에서 만든 공식 홈페이지(폐쇄됨)에서 다운로드 파일을 제공했고, 많은 이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 게임은 체험판이기에 큰 내용물은 없었다. 원본인 파랑구조대 초반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네이티오를 만나게 되면 메시지와 함께 게임이 끝난다.
그리고 황금 구조대는 포켓몬코리아에서 서비스를 중단한다. 대충 1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부터 포켓몬 팬카페 등지에서 황금 구조대 사이트에 접속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포켓몬 코리아는 예고 없이 황금 구조대 공식 홈페이지를 폐쇄했고, 다른 경로로도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현상금이 걸린 로스트미디어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하나의 의문이 들게 될 것이다. "네이버 카페 같은 곳에 게임 파일이 올라와있지 않을까?" 하지만 시대를 감안해야 한다. 당시 네이버 카페에 450MB의 첨부 파일을 올릴 방법은 거의 없었다. 분할 압축 파일을 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누구나 언제든지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게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기에 굳이 게임 파일을 분할 압축하는 수고를 들여서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사실은 뒤늦게 서양권 포덕들에게 알려지면서 관심도가 높아지더니 현상금까지 붙게 된다. 처음에는 200달러로 시작한 현상금은 현재 약 2,550달러까지 올라간 상태다. 이 사실은 뒤늦게 한국에 알려지고, 국내 팬들의 수색으로 이어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상기한 이유로 인해 개인 인터넷 공간에 황금 구조대 전체 파일을 게시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발굴 중에 클럽박스와 이글루스 등지에 소수의 팬들이 올려놓았다는 증언은 확보했으나 둘 다 서비스가 종료된 지 한참 지난 상태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4년에 로스트미디어 갤러리에서 에뮬카페존이라는 네이버 카페의 레벨 3 자료실에 황금 구조대 파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다른 사례처럼 단순 실행 파일일 확률이 높았지만, 카페 매니저가 올린 파일이 분할 압축 파일이라는 점에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쉽게도 매니저와 연락이 닿았지만, 단순 실행 파일이었다고 밝혀지면서 이 수색도 실패로 돌아간다.
이에 한 유저가 황금 구조대의 실행 파일을 바탕으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시도한다. 실행 파일을 이용해 역설계를 해서 소스 코드를 얻어내겠다는 신박한 발상이었으나, 실행 파일은 단순히 황금 구조대 사이트와의 통신 기능이 주 기능으로 담겨 있던 것이기에 안타깝게도 큰 진전은 없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시도하면서 밝혀낸 정보는 런처는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황금 구조대 개발자와 연락처를 찾아낸 것이었다. 동시기에 개발에 참여한 당시 개발팀장 맹주현씨의 포트폴리오 사이트까지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안타깝게도 현재 황금 구조대에 대한 수색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이후로 별다른 성과는 없었으며,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가능성은 황금 구조대가 깔려 있는 옛날 데스크탑 PC의 본체나 하드디스크를 입수하는 것뿐이다. 일부 증언에 의하면 학교 컴퓨터실에서 했다, 군대 인트라넷에서 받아서 행정실 컴퓨터로 했다고 하니 가능성은 없진 않다.
일상에 미스터리가 더해진 순간
사실 황금 구조대는 엄청나게 특별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닌텐도 전체를 통틀어서 유일무이한 PC 공식 이식작이라는 것 외에는 말이다. 물론 그거 하나만으로도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게임 자체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 제품판인 빨강/파랑구조대의 초반부 스토리가 제공되었을 뿐이다. 온라인 요소는 닌텐도의 통신 플레이를 PC로 구현한 것이다. 450MB나 되는 거대한 용량은? 그 중 대부분이 사운드 파일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수백만원에 달하는 현상금이 붙여질 정도로 황금 구조대에 특별한 가치가 붙은 것일까?
황금 구조대는 어쩌면 너도 나도, 한 번쯤은 해봤을지 모르는 흔한 게임이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아무런 제한 없이 풀어버린 게임이었으니까. 나도 어렴풋이 기억 저 편에 학교 컴퓨터실에서 황금 구조대를 하다가 선생님께 걸려 혼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떠올린다면 그냥 단순한 추억 속 게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황금 구조대는 단순히 추억 속 게임에 머무르지 않았다. 흔한 게임이었지만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흔적들. 웨이백 머신에도 남아있지 않은 당시 공식 홈페이지의 모습. 일부 게이머들의 스크린샷과 리뷰만이 황금 구조대가 존재했었다는 걸 알리고 있다. 공식적으로 서비스가 종료되며 완전히 사라진 게임은 미스터리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 정도로 넘길 수 있던 게임은 삭제되었다는 것이 촉매제가 되어 여러가지 요인들이 덧붙여졌다. 그렇게 황금 구조대는 신비로운 게임이 되었다. 단순한 체험판이었지만 여러 레이어가 켜켜이 쌓였다. 공식적으로 사라진 게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플레이 기록, 본편보다 몇배는 더 큰 용량, 닌텐도 유일의 PC 이식작, 한국 독점으로 출시한 게임. 이 레이어들이 쌓이면서 황금 구조대는 신비로움이라는 자산을 얻었다. 삭제되어 추억으로만 남을 게임은 역설적으로 '삭제' 되었기에 여태까지 생명력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사토 오사무의 <추텡>이라는 게임이 있다. 사토 오사무 특유의 정신 나간 게임 디자인을 제외하면 다른 게임들과 비슷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 게임이 화제를 가져왔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LSD>등의 기괴한 게임 디자인으로 유명한 사토 오사무라는 제작자가 일본에서만 발매했던 게임, 그리고 아무리 수소문해도 CD와 파일로 보유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한 다락방에서 발견된 복사본 CD. 이런 서사가 쌓이고 쌓여서 <추텡>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스트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로스트미디어의 대부분은 그저 단순한 것들이다. 투니버스에서 방영되었다가 다시 볼 수 없게 된 더빙 애니메이션, 서비스가 중단된 게임, 개봉 이후 VOD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다시 볼 수 없게 된 영화 등등... 어쩌면 이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면 특별한 취급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라졌기에, 현재까지 생명력을 이어오면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회자되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로스트미디어는 단순히 잃어버린 미디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잊혀진, 잃어버린 미디어부터 시작해서 그걸 찾아내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쌓인 서사들, 마침내 찾아내면서 해결하기까지. 이 모든 것이 로스트미디어라는 하나의 인터넷 장르를 완성하는 것이다.
언젠가 황금 구조대라는 로스트미디어에 '해결' 이라는 마침표가 찍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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