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힌 노래, 20년 만의 귀환
작년 한 해, 로스트미디어 계를 뜨겁게 달궜던 로스트웨이브가 하나 있다. 그것도 상당히 희귀한 "국내" 로스트웨이브.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노래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프루티거 에어로 이미지. OP는 이 노래를 유튜브와 레딧에 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버지는 종종 여러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오십니다. 대부분이 작동 안하는 전자기기들입니다. 허나 가끔 작동하는 제품이 몇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MP3(약간 S1 MP3플레이어 디자인)였습니다. 약 10년 전, 아버지가 가져오신 MP3 안에 이 곡, 단 한 곡이 들어있었습니다. 당시엔 그냥 컴퓨터에 넣어두고 잊고 살았습니다. 이후 파일 백업 과정에서 어찌저찌 구글 드라이브에 딸려 들어갔는지, 오랜만에 구글 드라이브에 가보니 이 파일이 있었습니다. 간만에 호기심이 생겨 이 노래를 Shazam같은 음악 검색 프로그램에도 돌려봤지만 어떤 결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파일 제목은 Modern.mp3, 태그를 뒤져봐도 특이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Modern.mp3>로 알려지게 된 로스트웨이브. 먼저 해외에서 시작되었던 수색은, 아카라이브 괴담미스터리 채널의 로스트미디어 탭에도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면서 국내에서 수색이 이어지게 된다. 한국인이던 OP는 이후 MP3 기종이 코원의 iAUDIO였다는 것을 추가로 언급한다. 그는 해외의 로스트웨이브 디스코드 채널인 FMM(Fond My Mind)에서 주로 활동했고, 괴미챈과 로미갤에도 등장하면서 수색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진전이 없었고 그는 서서히 소식이 뜸해진다.
이때 나왔던 추측으로는 밀림닷컴이나 큐오넷 등지에서 활동하던 무명 뮤지션의 노래, 회사에 넘긴 미발표 데모곡, 나의머리카락뭉치 등이 있었다. 하지만 밀림닷컴은 사이트가 폐쇄되었고, 큐오넷은 모든 페이지를 뒤져도 나오지 않았기에 수색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로스트미디어들이 그렇듯,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누군지 안다고 주장하는 트롤들이 끼기 시작한다. Glen, Passion Glen, 김영환 등... 다양한 가수를 내세우며 이 노래의 주인을 찾은 것 같다는 트롤이 등장했다. 그중 가장 압권인 트롤은 바로 얍(Yap)의 사례. 아무도 모르던 가수였고, 음색이 비슷했기에 제법 그럴싸한 주장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얍이라는 가수는 여장 남자 가수, 남근 노출 등의 논란을 일으켰던 파격적인 가수였다. 때문에 모두가 <Modern.mp3>의 감성적인 가사를 쓴 가수가 얍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수색에 박차를 가한다. 다시 말하자면, 오히려 얍의 등장이 <Modern.mp3>의 수색에 속도를 붙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결국 2024년 9월 27일, 디시인사이드 로스트미디어 갤러리의 쪼낙이라는 고닉이 <Modern.mp3>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성공한다. 그는 폐쇄된 밀림닷컴의 아카이빙 된 페이지 중에서 모던록 장르의 차트만 집중적으로 뒤졌고, 비밀의사중주라는 아티스트의 노래 <오늘을보내>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밀의사중주가 만든 다른 노래들과 그의 본명이 정재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렇게 로스트웨이브는 해결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원작자를 찾는 것뿐이었다.
*사실 더 자세한 발굴 과정이 있으나 이는 에펨코리아에 작성한 글, 인스타그램 카드뉴스로 대체한다.

원작자를 찾아서
그러나 원작자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일단 밀림닷컴이 폐쇄되었기에 접근 가능한 아키이빙된 페이지가 너무 적었다. 그래서 밀림닷컴을 통해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밀림닷컴에서 볼 수 있는 정보인 그의 아이디와 이름만으로 그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찾는 과정 속에서 점점 지쳐갔고, 아주 가끔씩 "사실 OP가 비밀의사중주(정재원) 본인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정도로 원작자를 찾는 것에 성과가 없던 것이다. 얻은 유일한 성과는 그와 똑같은 닉네임을 쓰는 짱공유의 계정이 2024년 8월까지 접속한 기록이 있다는 것.

그러던 중... 바로 어제, 디시인사이드 로스트미디어 갤러리의 Loding이라는 고닉이 비밀의사중주의 정체를 파악한 것 같다면서 게시글을 올린다. 게시글에 따르면 큐오넷에 동일한 아이디(squartet)를 쓰는 유저를 발견했고, 그 유저의 닉네임이 천재재원이었다. 천재재원, 그리고 정재원. 정황상 우리가 아는 비밀의사중주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가 바닐라 어쿠스틱이라는 그룹에서 바닐라맨이라는 활동명으로 음악활동을 아직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닐라맨. 우리가 아는 비밀의사중주는 바닐라맨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보통 뮤지션이 아니었다. 사실상 볼빨간사춘기의 본체라고 불릴 정도로 볼빨간사춘기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작업한 히트곡 메이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그는 성공한 뮤지션이 된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비밀의사중주가 취미로 음악을 하다가 접고 평범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비밀의사중주는 음악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그것도 남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성공한 히트곡 메이커가 되었다.
2004년의 홀로 사랑을 노래하던 청년은
이제는 모두에게 사랑을 노래하는 뮤지션이 되었다.

당신은 어떤 오늘을 보냈나요
정재원은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비밀의 사중주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으셨네요.
전혀 모르고 살았던게 재밌기도 하고 그러네요.
저 노래 잊고 살았어요.
...(중략)...
습작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실력은 없었고, 음악에 대한 열정만 가득했던
그 시절의 저에게 오늘을 선물해주고 싶네요.
아무도 인정 안해줬지만 잘했다고..
계속해! 노력도 재능이야ㅎㅎ
그리고 다른 스토리를 통해서는 "삶은 예측불허다"는 소감도 밝혔다. 그는 자신도 잊고 있던 열정 넘치던 시절의 서투른 본인의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느꼈을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순간, 그럼에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시간들. 그 모든 정재원의 오늘은 20년 뒤, 바로 오늘의 본인에게 선물처럼 돌아왔다. 상상하지도 못한 그 순간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오늘을 보내고 있다. 그게 때로는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또, 오늘의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당신의 오늘들은 언젠가 당신에게 선물처럼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떤 오늘을 보냈는가?
'로스트웨이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포스트락의 성배, All Lights Fucked on the Hairy Amp Drooling (0) | 2025.03.19 |
|---|---|
| 오늘을보내의 주인공 정재원(舊 비밀의사중주, 現 바닐라맨/VMX)님과의 인터뷰 (0) | 2025.03.10 |
| 잊혀진 존재에 대해서, Just Passin' By (0) | 2025.03.06 |
| 꿈은 영원히, Dreams 4ever (0) | 2025.03.05 |
| 신비함이 사라진 노래의 운명, Everyone Know That (1) | 2025.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