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Knows That, 모두가 그 노래를 알아요
라는 아련한 제목과는 다르게, Everyone Knows That(약칭: EKT)은 아무도 그 정체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그 노래를 몰랐다. 처음으로 이 노래에 대한 수색이 시작된 것은, 2021년 10월 7일이었다. 당시, Carl92라는 유저는 노래의 짧은 소절을 올리면서 곡의 정체에 대해 묻는 글을 watzatsong.com(역: 노래를 찾는 사이트)에 올린다.
그는 더 긴 버전을 올려달라는 요청에 "미안하지만 이게 내가 가진 전부다."라고 답하면서 추가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DVD 백업의 아주 오래된 파일 사이에서 샘플을 발견했으며, 아마 비디오에서 오디오를 캡처하는 방법을 배우며 저장한 것들 중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올린 노래 클립은 17초 짜리였으며, 음질도 불완전했다.
You're counting all the sheep in the sky
Caught up in a world of lies
Everyone knows that (You’ve got)
Ulterior motives
Tell me the truth
Every move shows
17초에 담긴 가사는 낮은 음질로 인해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많은 유저들은 상기한 바와 같이 추측했다. 처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노래였지만, 레딧의 로스트웨이브 관련 서브레딧에 퍼지면서 큰 호응을 얻게 된다. 심지어는 틱톡 등지에도 꽤 퍼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이제 정말 Everyone Knows That, 모두가 그 노래를 알게 된 것이다.
지지부진한 수사
그러나 OP(역: 원 글쓴이)인 Carl92는 첫 질문 이후 자취를 감춘다. 유저들은 OP의 증언이 더 없자 자체적으로 정보를 찾기 시작한다. 이때 많은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TV광고 가설이다. TV광고 가설에 의하면 이 노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광고에 일회성으로 사용되고 폐기된 노래라고 추측했다. 또한 오디오 파일에서 검출된 MTS 15.734KHz 파일럿 톤(주: TV방송에서 스테레오 출력을 위해 넣는 톤)은 북미 지역을 포함, 칠레, 콜롬비아, 대만, 필리핀 등 일부 지역의 TV 방송에서만 사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어느 나라의 노래인지는 몰라도, 텔레비전 상에서 녹음되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또 다른 이론은 새비지 가든(Savage Garden)이라는 밴드가 녹음했다는 설이었다. 밴드 멤버 Darren Hayes가 트위터에 "Everyone Knows That"이라고 과거에 올렸던 것이 밝혀지면서 제기된 가설이다. 그렇기에 Savage Garden이 이 노래를 만들었고, 마케팅 캠페인 용으로 로스트웨이브 문화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많은 가설이 있었다. 폴란드의 맥도널드 매장 내에서 2012년쯤에 나왔던 노래다, AI를 통해 만든 사기다 등등... 발견되기 직전에는 인도네시아의 iLirik.com 사이트에서 비슷한 내용의 가사가 웨이백머신을 통해 검색이 된다는 정보로 인해 동남아시아 쪽의 노래라는 의견도 있었다. 틱톡에서는 코이치 후지타라는 일본 프로듀서의 작업물 중 하나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읽다 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나오는 가설들이 전부 중구난방이었기에 수사에 큰 진척은 없었다. 게다가 OP마저 첫 게시글 이후로 사라진 바람에 증언을 더 확보할 수도 없었다. 이에 사람들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숨겨진 동기(Ulterior Motives)를 찾아내다
2024년 4월 28일, 레딧 유저 u/south_pole_ball과 u/One-Truth-5867이 1986년 포르노 영화 <Angels of Passion>(열정의 천사)의 그렇고 그런... 장면의 배경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Taboo III>라는 포르노 영화에서 비슷한 음악이 OST로 흘러나왔고, 그 노래의 작곡가인 크리스토퍼 부스(Christopher Booth)와 필립 부스(Philip Booth)가 다른 포르노 영화인 <Angels of Passion>에 OST로 <Ulterior Motives>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든 것을 확인했다. 제목인 <Ulterior Motives>는 기존에 알려진 <Everyone Knows That>의 가사와 일치하는 제목이었기에 확신을 가진 레딧 유저는 해당 포르노 영화를 확인하고, 그 노래가 맞음을 알아낸다.
곡의 정체를 밝혀낸 것은 기뻤지만, EKT를 찾아 나서던 유저들은 전부 벙찐 상태가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의 1980년대 명곡"을 찾아 나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포르노에 나오던 음악을 찾고 있던 것이었으니까.
당연히 이 노래의 정체에 대한 반응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Carl92의 숨겨진 동기(Ulterior Motives)가 보인다느니... 이건 이 노래에 대한 가장 미친 "뜨거운 결실(outcum)"이라느니... 아무튼 크리스토퍼 부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Ulterior Motives>에 대한 글을 쓰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리마스터 버전을 출시할 계획을 밝혔다.
모두가 알고 싶지 않았던
모두가 알지 못했기에, 모두가 알고 싶었던 노래는... 사실 모두가 알고 싶지 않았던 뒷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노래 자체는 여전히 들을 만하고, 꽤 괜찮다. 그러나 우리가 찾던 EKT는 포르노 영화의 성관계 장면의 배경에 삽입된 노래가 아니었다. 1980년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지 못해 잠깐 반짝하고 묻힌 노래. 우리가 아는 유명 가수가 무명 시절 녹음하고 사라진 노래. 그런 신비스러운 스토리가 곁들여진 것이 바로 EKT였다.
하지만 곡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노래에 대한 흥미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말했듯, 로스트웨이브라는 장르는 노래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노래를 찾기 시작한 사연부터,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그 순간의 희열. 이 모든 과정이 전부 로스트웨이브라는 장르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EKT는 밝혀진 그 순간부터 신비스러움과 낭만이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계속해서 OP인 Carl92에 대한 행적이 파묘되면서 더더욱 심해졌다. Carl92가 올린 버전의 EKT 주파수를 확인해 보면, 토렌트 사이트에 올라온 버전의 <Angels of Passion>과 동일하다. 이 말은 즉... Carl92는 욕구 해소를 위해 토렌트를 받고, 자신의 "뜨거운 결과물"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듣고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Carl92가 처음에 17초짜리 클립만 올린 것도 17초 뒤에는 뜨거운 신음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자기 위로를 하기 위해 토렌트에서 영상을 받았는데, 그 영상에 있는 노래가 궁금하다고 솔직하게 물어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추가 증언을 하지 않고 사라진 것도 슬슬 이해가 간다.
이렇게 뒷 이야기가 드러날수록 <Ulterior Motives>에 대한 흥미는 점점 떨어져 간다. 판치코나 FEX의 사례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첫째로, 로스트웨이브는 노래 자체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래가 좋아도, 그 뒤에 있는 이야기가 흥미롭지 못하다면 로스트웨이브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둘째로는, 로스트웨이브의 해결에는 OP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사례는 OP인 Carl92가 추가 증언을 계속하거나, 처음부터 아예 솔직하게 시원하게 한발 빼려다가 영상에서 듣게 된 노래라고 밝혔으면 금방 해결되었을 것이다.
모두가 알지 못했던 Carl92의 숨겨진 동기는 이 노래의 정체와 함께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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